2026년도 일본 예산안 처리가 법정 시한을 넘기게 되면서, 일본 정부가 결국 ‘잠정예산(Stopgap Budget)’이라는 고육지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는 2015년 아베 정권 이후 11년 만에 발생하는 이례적인 사건으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리더십과 일본 정국의 향방을 가늠할 중대 분수령이 되고 있습니다.
1. 11년 만에 ‘잠정예산’ 카드를 꺼낸 이유
일본의 회계연도는 매년 4월 1일에 시작됩니다. 정상적이라면 3월 31일까지 본예산이 국회를 통과해야 하지만, 현재 참의원(상원)의 ‘여소야대’ 구조가 강력한 브레이크가 되었습니다.

- 강 대 강 대치: 다카이치 총리의 국방비 증액과 공격적인 경제 정책에 대해 야당 연합이 ‘민생 우선’과 ‘재정 건전성’을 내세우며 끝까지 합의를 거부했습니다.
- 전략적 지연: 야당은 본예산을 볼모로 잡아 다카이치 정권의 불통 이미지를 부각하고, 4월 11일 본예산이 자동 성립되기 전까지 정치적 주도권을 쥐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2. 8.6조 엔 규모, 무엇을 지키기 위함인가?
이번 잠정예산은 약 8.6조 엔(한화 약 77조 원) 규모로, 본예산 성립 전까지 약 11일간의 행정 공백을 메우기 위해 편성되었습니다.

- 민생 인프라 보호: 약 4.2조 엔이 연금 지급, 의료 및 간호 보험 급여 등 필수 예산에 투입됩니다.
- 지방 행정 마비 방지: 지방교부세 2.1조 엔을 긴급 편성하여 각 지자체의 공무원 급여 및 운영비 중단을 막았습니다.
- 정책 추진력 유지: 다카이치 정권의 핵심 공약인 ‘고교 수업료 및 급식 무상화’ 예산 일부를 포함해, 정책 동력이 꺾이지 않았음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있습니다.
3. ‘네지레(뒤틀린) 국회’의 잔혹사와 다카이치의 행보
일본에서 중의원과 참의원의 다수당이 달라 국정이 마비되는 상태를 ‘네지레 국회’라고 부릅니다. 과거 사례를 보면 여소야대 국면에서의 예산 갈등은 정권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변수였습니다.
- 이시바 시게루 정권 (2024~2025): 낮은 지지율 속에서 야당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며 타협안을 찾았으나, 이 과정에서 리더십에 타격을 입고 조기 퇴진의 압박을 받았습니다.
- 2015년 아베 신조 정권: 반면 아베 전 총리는 잠정예산 편성이라는 위기 속에서도 압도적인 지지율을 바탕으로 정면 돌파에 성공하며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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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잠정예산 사태를 단순히 다카이치 총리의 협상력 부재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지난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며 ‘포스트 아베’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굳힌 다카이치 총리가 자신의 강점인 ‘할 말은 하는 강단 있는 이미지’를 십분 활용하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일본 여론은 사상 초유의 예산 지연에 대해 야당이 명분 없는 발목 잡기로 국정을 질질 끌고 있다는 ‘야당 훼방 프레임’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국민들은 이미 선거를 통해 다카이치에게 힘을 실어주었기에, 야당의 이러한 지연 전술은 오히려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잠정예산에 포함된 ‘고교 무상화’ 정책을 두고 일본 내에서도 재원 마련이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다수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미 확고한 지지 기반을 다진 다카이치 정권에게 이러한 비판이 치명적인 타격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4월 11일 본예산이 자동 성립되는 시점에 맞춰 다카이치 총리는 더욱 강력한 날개를 달고 국정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조심스레 예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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